ORIGIN

유래.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번진 학생 항일운동을 기리는 정부 기념일이다. 이 운동은 흔히 광주학생항일운동 또는 광주학생운동이라고도 부른다. 당시 한국인 학생들은 민족을 차별하는 식민지 교육에 오랫동안 불만을 품고 있었고, 광주에서는 독서회 같은 비밀 학생 조직이 동맹휴학(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거부하는 일)을 이끌어 왔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한국인 여학생들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며 모욕하자 한국인 학생들과 충돌이 벌어졌는데, 출동한 경찰은 일방적으로 일본인 학생 편을 들었다. 11월 3일 광주 시내에서 다시 충돌이 일어났고, 그날 오후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 300여 명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시위와 동맹휴학은 이듬해 초까지 서울과 평양 등 전국 학교로 퍼졌다. 이날은 1953년 국회 결의로 '학생의 날'이 됐고, 지금은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교육부와 국가보훈부가 함께 주관한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11월 3일은 여러 의미가 겹친 날짜였다. 일본에는 메이지 일왕의 생일을 기리는 '메이지절'이었고, 그해에는 음력 10월 3일 개천절과도 겹쳤다.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메이지절 기념식 뒤에 있을 신사 참배를 거부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운동에 전국 194개 학교, 5만 4,0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고 정리하며 3·1운동 이후 최대의 항일 민족운동으로 평가한다. 기념일의 역사도 순탄하지 않았다. 1953년 지정된 '학생의 날'은 유신 직후인 1973년 정부가 기념일을 통폐합하면서 폐지됐다가, 1984년 9월 국가기념일로 다시 살아났다. 2006년 2월 국회 결의로 이름이 지금의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바뀌었다. 기념일 규정은 이날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학생들의 자율역량과 애국심을 기르는 행사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광주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있어 당시의 기록을 전한다.

출처 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