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유래.
3·8민주의거 기념일은 1960년 3월 8일부터 10일까지 대전의 고등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와 학원 탄압에 맞서 벌인 시위를 기리는 국가기념일이다.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당인 자유당은 야당의 유세를 방해하면서도, 자기 당 행사에는 학생들을 동원하곤 했다. 열흘 전 대구에서 일어난 2·28 시위는 전국의 학생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 3월 8일 대전공설운동장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 장면의 선거 연설회가 열리기로 하자, 교육 당국은 학생들이 유세장에 나가지 않게 하라는 공문을 여러 차례 학교에 보냈다. 그러자 대전고 학생 1,000여 명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학원에 자유를 달라', '학생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고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9일에는 다시 시위를 준비하던 학생 대표들이 경찰에 연행됐지만, 10일 대전상고 학생 600여 명이 구속 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또 거리로 나왔다. 2009년 대전시의회가 기념 조례를 만들었고, 2018년 11월 대통령령 개정으로 국가기념일이 됐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3·8민주의거는 하루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3월 8일부터 10일까지 사흘 동안의 시위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대전상고 학생들이 바로 이튿날 뒤를 이었다고 소개되기도 하지만, 9일의 계획은 미리 새어 나가 대전고·대전상고 등 4개 학교 학생 대표 24명이 연행됐고, 대전상고의 시위는 10일에 일어났다. 사흘 동안 학생 100여 명이 연행됐고, 경찰 방망이에 맞아 고막이 터지는 등 크게 다친 학생도 있었다. 대전고 교사 두 명이 수갑을 찬 채 경찰서로 끌려가기도 했다. 3·8민주의거기념사업회는 이 사건을 충청권 최초의 학생운동이자 대구의 2·28, 마산의 3·15와 함께 4·19혁명의 단초가 된 사건으로 평가한다. 2013년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으로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을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같은 해 2월 지정된 2·28보다 아홉 달가량 늦었다. 지금은 국가보훈부가 주관해 기념행사를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