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 화해의 날 (Day of Reconciliation)

12월 16일

유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매년 12월 16일 지키는 화해와 국가 통합을 위한 공휴일이다. 인종 분리·차별 체제인 아파르트헤이트가 끝난 뒤, 1995년 처음 ‘화해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기념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람을 인종에 따라 나누고 거주와 사회생활을 법으로 분리해 다수 주민에게 불평등을 강요한 제도였다. 이 날의 화해는 개인 사이의 다툼을 푸는 뜻에 그치지 않고, 그런 역사를 겪은 사회가 함께 살아갈 기반을 찾는 의미를 갖는다. 12월 16일은 원래부터 모두에게 같은 기억을 지닌 날짜가 아니었다. 아프리카너의 전통에서는 1838년 블러드리버 전투를 앞두고 보어계 이주민들이 승리하면 그 날을 감사의 날로 지키겠다고 맹세한 일을 기려 ‘서약의 날’로 불렸다. 한편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에서는 1961년 이날 아프리카민족회의의 무장조직 움콘토 웨 시즈웨가 결성된 일을 기억했다. 민주화 이후 정부는 서로 다른 집단의 역사적 의미를 인정하면서, 같은 날짜를 화해와 공동의 미래를 위한 날로 바꾸었다.

이야깃거리

날짜를 새로 고르는 대신 기존의 12월 16일을 유지하고 이름을 바꾼 점이 이 기념일의 특징이다. 남아공 정부는 아프리카너 전통과 해방 투쟁 전통 양쪽에서 이 날이 지닌 의미를 인정하는 것이 국가 통합을 상징적으로 추진하는 방법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고 두 사건의 성격이 같아지거나 차별의 피해가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배우면서, 그 기억이 다른 공동체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함께 살피는 날로 읽는 편이 정확하다. 정부의 역사 설명은 1960년 샤프빌에서 경찰이 평화적 시위대에 발포한 사건 이후 무장 투쟁이 등장한 맥락도 짚는다. 전투와 저항의 이름을 단순한 승리 축하로 묶기보다, 갈등의 역사를 이해하고 통합을 지향하도록 기념의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 화해를 권하는 다른 기념일과는 국가적 배경과 목적이 다르며, 1838년이나 1961년은 기념 대상 사건의 연도이지 ‘화해의 날’의 시행 연도가 아니다.

출처 https://www.gov.za/day-reconciliation

12월 16일의 다른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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