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유래.
여권통문의 날은 매년 9월 1일로,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의 여성들이 발표한 '여권통문(女權通文)'을 기념하는 법정기념일이다. 통문은 여러 사람에게 돌려 알리는 글을 말하며, 원래 이름은 여학교를 세우자는 뜻의 '여학교 설시 통문(女學校設始通文)'이다. 배경에는 개항 이후의 변화가 있었다. 1876년 개항 뒤 조선 사회에 개화론이 등장하면서 나라가 개화하려면 여성도 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고, 독립협회와 『독립신문』은 남녀평등을 이루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여성교육을 강조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북촌의 양반 여성들이 찬동자 300명 정도를 모아 이소사·김소사의 이름으로 통문을 발표했다. 통문은 여성도 정치에 참여하고, 남성과 평등하게 직업을 갖고,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황성신문』과 『독립신문』이 이를 보도했다. 2019년 10월 31일 국회는 매년 9월 1일을 여권통문의 날로 정하는 양성평등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현재 같은 법 제38조는 이날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이 발표된 날로 규정하고 있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발표자로 남은 '이소사', '김소사'의 소사(召史)는 이름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는 기혼 여성을 이름 대신 신분에 따른 호칭으로 불렀는데, 양반층은 성 뒤에 '씨', 평민층은 '소사'를 붙였다. 통문은 선언에서 끝나지 않았다. 참여한 여성들은 같은 해 9월 12일 한국 최초의 여성운동단체로 꼽히는 찬양회를 조직했고, 나라에 관립 여학교를 세워 달라고 상소했다. 고종이 설립을 약속했지만 보수 유생층의 반대와 재정 부족으로 이뤄지지 않자, 이들은 스스로 순성학교를 세웠다. 한국 여성이 직접 세운 최초의 여학교로 평가되며, 개교 시점은 자료에 따라 1898년 12월, 1899년 2월 등으로 조금씩 다르게 기록돼 있다. 학교는 늘 운영비 부족에 시달리다 1900년대 초 자취를 감췄다. 여성가족부는 법 개정 당시 여권통문이 세계 여성의 날의 계기가 된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 시위보다 10년 앞선 일이지만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