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유래.
8월 12일 '이산가족의 날'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에서 지켜 온 기념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남한에 사는 북한 출신 이산가족들이 1982년 8월 12일을 이산가족의 날로 정하고, 같은 해 12월 '1000만 이산가족 재회 추진위원회'를 사단법인으로 결성했다고 기록한다. 이 날짜는 1971년 대한적십자사가 북한에 이산가족 찾기를 제의한 날과 같다. 그해 8월 12일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특별성명을 내고 남북 이산가족의 비극을 '금세기 인류의 상징적 비극'이라 부르며, 통일이 당장 어렵다면 적어도 이산가족의 실태를 파악하고 소식을 전하며 재회를 주선하는 가족찾기운동부터 하자고 제안했다. 북한 측이 8월 14일 수락 뜻을 밝히면서 판문점에서 예비회담이 열렸고, 이후 남북적십자회담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진행됐다. 다만 1982년 민간 기념일을 정하며 이 날짜를 고른 이유를 직접 밝힌 기록은 찾기 어렵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지금은 '이산가족의 날'이 두 개다. 2023년 3월 법 개정으로 추석 전전날(음력 8월 13일)이 정부의 법정기념일 '이산가족의 날'이 됐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그동안 민간 차원에서 기념해 오던 이산가족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8월 12일은 민간 기념일의 날짜이고, 정부 공식 기념식은 추석 무렵에 열린다고 구분하면 된다. 1971년 제의로 시작된 남북적십자회담은 북한 측의 정치 문제 제기로 여러 차례 중단됐지만, 우리역사넷은 이 회담이 오랫동안 끊겼던 남북 간 접촉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한다. 회담은 1985년 남북 고향방문단 교류로 이어졌다. 오늘날 이산가족 찾기를 신청한 사람의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8월 12일은 반세기 전 '가족을 찾자'는 제안을 떠올리는 날로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