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유래.

전미 자유의 날은 매년 2월 1일, 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제를 폐지하는 수정헌법 제13조를 각 주에 제안하는 의회 공동결의안에 서명한 일을 기리는 날이다. 1863년의 노예해방선언은 남부 연합 가운데 반란 상태에 있던 지역에만 적용됐고, 연방에 남은 '경계주'의 노예제는 그대로 남겨 두었다. 링컨은 노예제를 확실히 끝내려면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상원은 1864년 4월 개정안을 통과시켰지만 하원은 처음에 통과시키지 못했고, 링컨이 직접 나선 끝에 1865년 1월 하원이 찬성 119표, 반대 56표로 가결했다. 링컨은 2월 1일 개정안을 주 의회들에 보내는 결의안을 승인했고, 그해 12월 6일 필요한 4분의 3 주가 비준하면서 제13조가 헌법에 들어갔다. 기념일은 노예로 태어나 교육자이자 은행가로 일한 필라델피아의 리처드 R. 라이트 시니어가 1942년 만들었다. 그가 1947년 숨진 이듬해인 1948년 6월 30일 의회가 대통령에게 이날을 선포할 권한을 주는 공동결의를 승인했고, 1949년 1월 25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첫 포고문을 냈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6월 19일의 '준틴스'와 혼동하기 쉽지만 두 날은 다르다. 준틴스는 1865년 텍사스주 갤버스턴에 노예해방 소식이 전해진 날을 기리며 2021년 연방 법정 공휴일이 됐다. 반면 전미 자유의 날은 공휴일이 아니라, 대통령이 매년 포고문을 낼 수 있도록 연방법에 정해 둔 기념일이다. 라이트가 이 날을 구상한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루스벨트 대통령이 말한 '네 가지 자유'였다. 그는 흑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리기 전까지 미국인은 자유롭지 않다는 글을 신문 필라델피아 트리뷴에 썼다. 초기 기념행사에는 퍼레이드와 함께 전국 대표들이 독립기념관과 의회당에 모였고, 서굿 마셜과 마틴 루서 킹 주니어 같은 인물이 연사로 나섰다. 자유의 종에 화환을 바치는 의식은 꾸준히 이어진 전통이다. 트루먼의 첫 포고문은 1948년 12월 유엔 총회가 채택한 세계인권선언도 함께 언급했다. 2월의 첫날이어서 흑인 역사의 달과 시작을 함께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 누군가의 서명 한 줄에서 시작됐다”

출처 law.cornell.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