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유래.

4·19혁명 기념일은 1960년 4월 19일 학생과 시민들이 3·15 부정선거와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맞서 전국에서 일어선 일을 기리는 국가기념일이다. 이승만 정권은 1952년 발췌개헌과 1954년 사사오입 개헌을 밀어붙여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고, 1960년 선거에서는 공무원과 경찰까지 동원해 표를 조작했다. 2월 대구, 3월 대전과 마산에서 학생과 시민의 항의가 이어졌고,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며 분노가 전국으로 번졌다. 4월 18일 시위를 마치고 돌아가던 고려대 학생들이 정치깡패에게 습격당하자, 이튿날 서울에서만 약 3만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거리로 나왔고 그중 수천 명이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로 향했다. 경찰이 발포하면서 이날 서울에서만 약 130명이 숨졌다. 4월 25일에는 대학교수 258명이 시위에 나섰고,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4월 26일 물러났다. 정부는 1973년 3월 이날을 '4·19의거 기념일'로 처음 지정했고, 1994년 12월 지금의 '4·19혁명 기념일'로 이름을 바꿨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4·19혁명의 희생 규모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민주화운동사전은 혁명 전 기간에 전국에서 186명이 숨지고 6,026명이 다친 것으로 정리한다. 거리에는 대학생과 중고생뿐 아니라 초등학생도 나섰다. 서울 수송초등학교 6학년 전한승이 시위를 구경하다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자, 친구들은 '우리 부모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대지 말라!'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4·19는 4월 19일 하루만 가리키는 말이 아니기도 하다. 넓게는 2월 28일 대구 시위부터 4월 26일 대통령 하야까지 이어진 흐름 전체를 '4월혁명'이라 부르며, 대한민국 최초의 전국 단위 민주화운동으로 평가된다. 4·19의 정신은 지금의 헌법 전문에도 담겨 있다. 헌법은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밝힌다. 정부 기념식은 1974년부터 국가보훈처(지금의 국가보훈부) 주관으로 열리며, 매년 4월 19일 서울 국립4·19민주묘지에서 거행된다.

출처 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