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유래.

6·10만세운동은 1926년 6월 10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장례일에 서울에서 학생들이 주도해 벌인 독립 만세 시위다. 임금의 장례일을 '인산일(因山日)'이라고 하는데, 이날 상여가 지나는 길에는 학생 2만 4,000여 명이 늘어서 있었다. 3·1운동 이후 국내 민족운동은 일제의 탄압과 회유 속에 침체해 가고 있었고, 순종의 죽음은 나라 잃은 설움을 다시 일깨웠다. 일제는 3·1운동이 되풀이될 것을 경계해 군대 7,000여 명을 서울에 모으고 감시를 강화했다. 사회주의 계열이 준비하던 시위 계획은 사전에 발각됐지만, 전문학교 학생들과 중앙고보·중동학교 학생들은 각자 격문을 찍어 나눠 가지며 준비를 이어 갔다. 오전 8시 30분쯤 상여가 종로 단성사 앞을 지날 때 중앙고보생 300여 명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격문을 뿌린 것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만세 소리가 이어졌다. 이날은 2020년 12월 국무회의에서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개정안이 의결되면서 정부 기념일이 됐고, 지금은 국가보훈부가 기념식을 주관한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6·10만세운동은 3·1운동, 1929년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독립운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3대 만세운동으로 꼽힌다. 같은 6월 10일이지만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기리는 '6·10민주항쟁 기념일'과는 다른 기념일이어서, 정부 기념일 목록에는 두 날이 같은 날짜에 나란히 올라 있다. 시위 뒤 서울에서만 210여 명, 전국적으로 1,000여 명의 학생이 붙잡혔고, 주동 학생들은 재판에 넘겨져 징역형을 받았다. 한 학생은 법정에서 '자유를 절규하면 자유가 생긴다는 결심으로 거사에 임하였다'고 진술했다. 시위는 서울에서 일어났지만 소식이 퍼지면서 여러 지방 학교의 동맹휴학(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거부하는 일)으로 번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운동이 침체된 민족운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3·1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정부 주관 기념식은 2021년부터 열렸고, 100주년인 2026년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념식이 열렸다.

출처 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