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유래.
6·10민주항쟁 기념일은 1987년 6월 10일을 정점으로 20여 일 동안 전국에서 이어진 민주화 시위를 기리는 국가기념일이다. 1985년 총선 이후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는 '직선제'로 헌법을 바꾸자는 요구가 커졌지만 여야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그런 가운데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 고문으로 숨졌고,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임기 안에 개헌을 하지 않겠다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5월 18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박종철 사건이 정권 차원에서 축소·조작됐다고 폭로했다. 야당과 재야, 종교계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만들고 6월 10일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열기로 했다. 대회 하루 전 연세대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며 분노는 더 커졌다. 시위가 전국의 대도시와 중소도시, 군 단위까지 번지자, 6월 29일 여당 대표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2007년 5월 이날을 법정기념일로 정했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6·10민주항쟁은 '6월 민주항쟁' 또는 '6월항쟁'으로도 불린다. 같은 날짜의 '6·10만세운동 기념일'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기리는 별개의 국가기념일이니 헷갈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항쟁 기간 경찰이 쏜 최루탄은 67만 발이 넘었고, 6월 18일 '최루탄추방대회'와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에는 전국에서 각각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심에서는 '넥타이 부대'라 불린 사무직 노동자들도 시위에 함께했다.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은 7월 5일 끝내 숨졌다. 항쟁의 결과 그해 10월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이 고쳐졌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고, 임기는 5년이며 다시 할 수 없다는 지금의 헌법 조항이 이때 만들어졌다. 1988년 2월 25일 시행된 이 헌법이 지금도 쓰이고 있다. 6월항쟁의 경험은 그해 7월부터 이어진 노동자들의 대규모 투쟁으로도 이어졌다. 기념행사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