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유래.
부마민주항쟁 기념일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유신체제에 맞서 일어난 항쟁을 기리는 국가기념일이다. 유신체제는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계엄령을 내리고 국회를 해산한 뒤 국민투표로 헌법을 바꿔 만든 1인 장기 집권 체제를 말한다. 1979년에는 경제 위기로 중소기업이 줄줄이 쓰러졌고, 노동집약적 제조업이 몰린 부산과 마산은 타격이 특히 컸다. 8월에는 YH무역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을 경찰이 강제 해산했고, 10월 4일에는 야당인 신민당 총재 김영삼이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됐다. 16일 아침 부산대 도서관 앞에서 학생 500여 명이 시위를 시작했고, 시내로 나갈 무렵 약 5,000명으로 불어났다. 17일 밤에는 노동자, 상인, 고교생 등 시민이 대거 합류했고, 18일에는 시위가 마산으로 번졌다. 정부는 18일 0시 부산에 비상계엄을, 20일 정오 마산·창원 일대에 군 병력을 들이는 위수령을 내렸다. 2019년 9월 국무회의 의결로 국가기념일이 됐고, 그해 10월 16일 첫 정부 기념식이 열렸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부마'는 부산과 마산의 앞 글자를 딴 이름이다. 계엄령과 위수령으로 시위는 겉으로는 빨리 진압됐다. 부산에서 1,058명, 마산에서 505명이 연행됐고 그중 일부는 군사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항쟁 대응을 두고 정권 안에서 강경론과 온건론이 부딪쳤고, 항쟁이 시작된 지 열흘 만인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살해하면서 유신체제는 막을 내렸다. 그래서 부마민주항쟁은 유신체제의 붕괴를 앞당긴 결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구호에 '부가가치세를 철폐하라'가 등장하고 세무서가 공격받은 데서 보이듯, 정치적 요구와 함께 생활고에 대한 분노가 함께 터져 나온 시민항쟁이기도 했다. 정부는 이 항쟁을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한국 현대사의 4대 민주항쟁으로 소개하지만, 국가기념일 지정은 넷 가운데 가장 늦었다. 2013년 관련자 명예회복과 보상을 위한 법률이 제정됐고, 기념식은 행정안전부가 주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