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유래.

미국 독립기념일은 매년 7월 4일, 1776년 대륙회의가 독립선언문을 공식 채택한 일을 기리는 날이다. 당시 북아메리카 동부에는 영국이 다스리던 13개 식민지가 있었고, 이 식민지 대표들이 모인 대륙회의가 사실상 공동 정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 1775년 6월 대륙회의는 대륙군을 창설했고, 1776년 1월 나온 토머스 페인의 소책자 '상식'이 수천 부씩 팔리며 독립 여론도 커졌다. 6월 7일 버지니아 대표 리처드 헨리 리가 '이 연합 식민지는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이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결의안을 냈고, 의회는 존 애덤스,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등 5인 위원회에 선언문 작성을 맡겼다. 초안은 제퍼슨이 썼다. 7월 2일 독립 결의안이 12개 식민지의 찬성으로 채택됐고(뉴욕은 표결에 불참), 의회는 이틀 동안 선언문 문구를 다듬어 7월 4일 공식 채택했다. 이날은 1870년 의회가 워싱턴 D.C.의 공휴일로 처음 지정했고, 지금은 연방법이 정한 법정 공휴일이다. 연방 공휴일은 연방 정부와 워싱턴 D.C.에 적용되며, 각 주는 자체 공휴일을 따로 정한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흔히 독립선언문이 7월 4일 대표 전원의 서명으로 완성됐다고 알려져 있지만, 미국 국립문서보관소는 이를 가장 널리 퍼진 오해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채택된 선언문은 그날 밤 의회 공식 인쇄업자 존 던랩의 인쇄소에서 찍혀 7월 5일 아침 각지로 보내졌고, 양피지에 정서한 문서에 서명이 이뤄진 것은 8월 2일이었다. 최종 서명자는 56명이었지만 모두가 그날 한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찍은 '던랩 인쇄본'은 지금까지 26부가 남아 있다. 7월 2일의 의미도 크다. 존 애덤스는 7월 3일 아내 애비게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1776년 7월 2일'이 미국 역사에서 가장 기억될 날이 되고, 후대가 축포와 종소리, 모닥불과 불빛으로 기념할 것이라고 썼다. 축하 방식은 내다봤지만 날짜는 이틀 빗나간 셈이다. 공교롭게도 애덤스와 제퍼슨은 선언문 채택 50주년인 1826년 7월 4일, 몇 시간 차이로 세상을 떠났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외계인도 꼭 이날 침공하는 그 클리셰”

출처 archives.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