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유래.

눈물의 길 추모일은 1830년대 미국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고향을 잃고 서쪽으로 끌려간 아메리카 원주민, 특히 체로키족의 고난을 기억하는 날이다. 출발점은 1830년 5월 28일 앤드루 잭슨 대통령이 서명한 '인디언 이주법'이다. 미시시피강 동쪽에 사는 원주민 부족과 이주 조약을 맺을 권한을 대통령에게 준 법으로, 이후 강압적인 조약과 군대 동원으로 약 10만 명이 지금의 오클라호마 지역인 '인디언 준주'로 옮겨졌다. 체로키, 촉토, 치카소, 크리크, 세미놀 부족이 대표적이다. 체로키족은 미국 연방대법원 소송에서 조지아주를 상대로 이기기도 했지만, 1835년 부족 내 소수파 대표만 서명한 뉴에코타 조약이 이듬해 상원에서 단 한 표 차로 비준되면서 이주를 강요당했다. 1838년 5월 연방군과 주 민병대가 체로키족을 수용소로 몰아넣기 시작했고, 1만 6,000명이 넘는 사람이 강제로 고향을 떠나 1839년 3월까지 서쪽에 도착했다. 다만 9월 16일이라는 날짜를 정한 정부나 부족 기관은 공식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주로 민간 기념일 달력을 통해 알려진 추모일이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눈물의 길'은 좁게는 체로키족의 이주 경로를, 넓게는 여러 부족이 겪은 강제 이주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이주 과정에서 몇 명이 숨졌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체로키족과 함께 길을 걸은 선교사 의사 엘리저 버틀러는 4,000명 이상, 곧 체로키 인구의 약 5분의 1이 숨졌다고 추산했다. 특히 아기와 어린이, 노인에게 가혹한 길이었다. 미국 정부는 조약에서 약속한 500만 달러도 끝내 지급하지 않았다. 일부 기념일 사이트는 9월 16일을 '마지막 체로키 일행이 1838년 오클라호마에 도착한 날'로 소개하지만,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은 마지막 이주 집단이 1839년 3월 24일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어 이 설명은 맞지 않는다. 1987년 미 의회는 '눈물의 길 국립역사탐방로'를 지정했다. 체로키 이주 집단 17개가 지나간 육로와 물길 약 2,200마일이 9개 주에 걸쳐 있다. 1839년 다시 세워진 체로키 네이션은 오클라호마주 털리쿼를 수도로 삼았고, 이곳은 지금도 체로키 네이션의 본부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추모의 가장 중요한 시작이다”

출처 nps.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