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유래.

로자 파크스의 날은 1955년 12월 1일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버스 좌석을 백인 승객에게 내주라는 운전기사의 요구를 거부해 체포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를 기리는 날이다. 당시 미국 남부에는 공공시설에서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이른바 '짐 크로' 법과 정책이 있었다. 몽고메리 버스도 좌석이 인종별로 나뉘어 있었고, 운전기사가 백인 승객을 위해 흑인 승객을 일으켜 세우는 일이 흔했다. 운전기사에게는 명령을 따르지 않는 승객을 체포할 법적 권한까지 있었다. 백화점 재봉사로 일하던 42세의 파크스는 그날 퇴근길 버스의 '유색인' 구역에 앉아 있었지만, 백인 구역이 차자 자리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았고 이를 거부해 체포됐다. 항의 전단이 빠르게 퍼졌고, 12월 4일 지역 지도자들이 몽고메리 개선협회를 꾸려 26세 목사 마틴 루서 킹 주니어를 회장으로 뽑았다.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은 381일 동안 이어졌다. 1956년 11월 13일 연방대법원이 앨라배마의 버스 분리법을 위헌으로 판단했고, 12월 20일 몽고메리시에 버스 분리 철폐 명령이 내려졌다.

A LITTLE MORE TO KNOW

이야깃거리.

파크스는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평범한 승객만은 아니었다. 그는 1943년부터 1956년까지 12년 동안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몽고메리 지부의 서기로 일했고, 체포 당시에는 지부장 E. D. 닉슨의 비서 역할도 맡고 있었다. 버스 분리를 끝낸 소송도 파크스 본인의 사건이 아니었다. 변호사 프레드 그레이는 앞서 버스에서 차별을 겪은 오렐리아 브라우더, 클로뎃 콜빈 등 여성 네 명을 원고로 '브라우더 대 게일' 소송을 냈다. 콜빈은 같은 해 3월 2일 자리 양보를 거부해 수갑을 차고 끌려 나간 15세 학생이었다. 보이콧 이후 파크스는 일자리를 잃고 살해 위협까지 받았다. 그를 기리는 날짜는 주마다 다르다. 오하이오주는 의회 의원 조이스 비티가 주 의원 시절 추진한 법으로 체포일인 12월 1일을 로자 파크스의 날로 정했다. 캘리포니아주는 2000년 결의로 그의 생일인 2월 4일과 이후 매년 2월 4일 다음 첫 월요일을 로자 파크스의 날로 정했다.

“버스 좌석 하나에서 시작된 그 작은 거부가 역사를 바꿔놓았다”

출처 archives.gov